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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_024) 매일이 아니라 영원히 죽읍시다

아름다운영혼과동행 2012. 9. 12. 13:08

■  p_024) 매일이 아니라 영원히 죽읍시다.

 

 

전쟁터에서 살기로 작정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진리는 아니지만 뭔가

큰 뜻을 의미하는 것 같군요.

 

우리가 사는 이 현상계는 피사체로 드러내기를 원하고 의식을 우월적 권위로 굳히게 됩

니다. 바로 이러함이 정상적 당당한 존재자가 아니냐? 그럴 수 도 있겠지요.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구하는 방법론으로 내가 죽어, 살 수 있다면 당연히 죽어야 할것으

로 생각 합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힘겨루기 소산물이니, 맞장치는 손벽이 없으면 됩

니다.

 

나는 변하지 않고 세상이 변하길 기대함은 무지함의 극치일 것 같고, 선견자 선지자 지혜

자란 결과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 처지에 남을 구제한다 함은 자신도 죽고 상대도 죽이는 결과이니

신중한 나팔이 되어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죽음의 진리는 모두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바울(Paul)은 매일 죽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진리의 말씀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는법을 설파하고, 알려 주건만 도무지 죽지를 않으니 이것

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죽이는 기초는 아주 쉬운 것 부터 시작이 좋을 듯 합

니다. 악습을 단번에 바꿔 버립니다. 술을 마셔야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술을 끊을 수 없

습니다.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담배를 피워야하는 이유가 없을 때 만 가능합니다.

 

부당하다고 목청을 돋움이 바로 다툼이고 파괴요 자멸입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상대

가 무시무시한 터미네이터(이성이 없는 괴물) 일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즉시 물러섬

이 답입니다. 자신이 삼손(samson)이 아님에도 사자를 상대로 시비를 가르지는 않을 것

입니다.

 

사자를 상대로 할 때는 자존이 없고, 토끼를 상대 할 때는 자존이 있고, 이런 논리는 무지

한자의 피폐한 정신에서 나옵니다. 세상을 보는 겸허한 눈이 없기에 비교의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사는데, 선악이 존재할리 없고, 깊은 산속에서 눈감고 깨우침은

살얼음과도 같아서 차겁기는 하지만 순식간에 부서지고 맙니다. 아수라장 난장판에서 깨

우침은 남극의 빙산과도 같습니다.

 

즉 우리의 현실속 현상계 피사체들과 유대를 유지하면서 깨우쳐야만 됩니다.

토굴속 기도방에서 통곡해도 기분만 시원하지 답은 없습니다.

훌륭한 선사(禪師)와 수십시간 명언을 듣고, 무릎을 쳤다해도 대문을 나오는 순간 모두 녹

아서 소멸됩니다.

 

자신이 깨치고, 자신 것으로 화하지 않음은 모나리자(Leonardo da Vinci: Mona Lisa) 일

뿐입니다. 지존(至尊)도 없고 자존(自尊)도 없습니다. 없는 지존 자존을 만들고, 유지하면

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지존 자존을 부축이고, 들어본적 없는 괴이한 논리를 내세워 권위와 실리를 추구하는 모략

배들 농간에, 가난한 심령들이 황폐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자신이 구원자입니다.

 

함께 하실것으로 믿습니다

 

 

http://clankorea.com/peace

국민평화위원 / 송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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